시리즈물(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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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없삶 ep. 6 - [Day 26] 완전변태(Complete Metamorphosis)
곤충들은 대부분 성장 과정에서 한번 혹은 여러 번의 변태(Metamorphosis)의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곤충의 변태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아래 그림 참조), 유충이 번데기 과정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성충이 되는 완전변태(Complete Metamorphosis)와, 탈피라는 허물 벗기 과정을 통해 이전에 비해 더 성숙하고 큰 개체의 성충이 되는 불완전변태(Incomplete Metamorphosis)가 있다. 우선, 우리 인간은 일생을 통해 불완전 변태의 과정을 수시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피부에 쉴세 없이 나오는 피부 각질은 수시로 재생되는 우리 피부의 탈피 과정의 흔적으로 보인다. 즉, 고등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 불완전변태의 과정은 우리가 의식하지 ..
2023.11.26 -
술없삶 ep. 5 - [Day 4] November
11월은 유독 나에게 특별하다. 1977년 11월에 우리 부모님이 결혼을 하셨다. 1981년 11월에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 2015년 11월에 나는 담배를 끊었다. 2018년 11월에 지금의 아내를 처음으로 만났다. 2020년 11월에 우리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2023년 11월, 나는 술을 끊었다.
2023.11.25 -
술없삶 ep. 4 - [Day 2] 어색한 동거 - P.S I miss you
술과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기후변화 대응을 업으로 살아가는 나는 지구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자연 간섭의 최소화를 추구한다. 모든 사람과 동물, 곤충, 식물, 물건은 각자 본연의 재능과 기능, 그리고 존재의 이유가 있기에, 어느 하나 의미 없거나 쓸모없는 것이 없다.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스마트폰도, 그리고 이 한 캔의 맥주도 그렇다. 평소처럼 쟁여 두었던 맥주 8캔 짜리 번들 중 6캔과 소주 한 병이 냉장실에 남아 있었다. 게다가 정말 맛있는 온도로 맞춰서 먹으라고 아내의 친구가 준 아사히 슈퍼 드라이 생맥주도 3캔이나 냉동실에 남아 있었다. 심지어 지인 회사의 짧은 ESG 컨설팅을 대가로 받은 좋은 와인까지... 아무리 술과 인연을 끊었다고 해도 20년 지기 연인..
2023.11.24 -
술없삶 ep. 3 - [Day 1] 헤어질 결심
변화의 새벽은 그렇게 뜬금없이 찾아왔다. 그렇게 잠이 깬 새벽녘에 혼자서 술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는, 아무런 통보나 여지없이 일방적으로 술과의 이별을 결정했다. 매우 충동적이면서도 불가역적인 결정이었다. 술은 아직 이러한 나의 심경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주방 냉장고에서 나와의 저녁 만남을 위해 스스로를 차갑고 매력적인 온도로 유지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이러한 생각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 알람이 울리고, 나는 외근을 위해 황급히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반가운 순댓국집에 들어가 내 인생 마지막 해장식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내 마음이 변한 건지 사장님이 변한 건지, 술의 단짝 친구인 순댓국도 맛이 예전 같지 않았다. 술과 헤어지면 순댓국과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
2023.11.23 -
술없삶 ep. 2 - [Day 1] 그래도 우리, 정말 좋았잖아...
새벽 3시 즈음 스르르 눈이 떠졌다. 육체는 아직 술이 덜 깬 상태였으나, 나의 의식은 나름 또렷하게 깨어나는 것 같았다. 입은 여전히 텁텁하고 온몸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알코올의 몽롱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가운데, 지난 밤 아내와의 대화와 아이의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우리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갑자기 술과 함께 울고 웃었던 지난 20 여 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흡사,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증언하는 생과의 이별의 순간에 마주한다는 순간적 회상처럼 느껴졌다. 담배를 끊었던 2015년 11월 1일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존경하는 작가 Allen Carr의 Easy Way to Stop Smoking 이라는 책을 통해 금연에 대한 많은 준비와 훈련을 했던 상황이었기에, 헤어..
2023.11.21 -
술없삶 ep. 1 - [Day 0] 주도권을 잃은 저녁 식사
술을 잘 마시는 주당도 아니고 시끌벅적한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혈기 왕성했던 20대를 지나 혼자만의 삶을 즐기던 30대 기간에는 퇴근 후 맥주를 곁들인 영화 한 편이 나의 내향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던 유일한 취미였던 것 같다. 그렇게 소소하게 시작된 술과의 인연은 8년 전 '담배로부터의 독립'을 계기로 더욱 끈끈한 관계가 되었고, 이후 결혼, 그리고 아이를 양육하는 와중에도 간헐적 잡음은 있었으나 큰 무리 없이 관계를 이어 왔다. 무언가 이상한 기후를 느낀 건 아주 최근이었다. 마냥 즐거웠던 나 자신과의 술자리가 예전처럼 즐겁지가 않았다. 살짝 무뎌지는 감각과 함께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이완되었던 지난날과 달리, 사소하고 작은 외부의 자극이 이상하리만큼 커다란 감정의 변화로 이어졌다. ..
2023.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