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없삶 ep. 1 - [Day 0] 주도권을 잃은 저녁 식사

2023. 11. 20. 08:03시리즈물/술이 없는 삶 | Alcoholles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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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잘 마시는 주당도 아니고 시끌벅적한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혈기 왕성했던 20대를 지나 혼자만의 삶을 즐기던 30대 기간에는 퇴근 후 맥주를 곁들인 영화 한 편이 나의 내향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던 유일한 취미였던 것 같다. 그렇게 소소하게 시작된 술과의 인연은 8년 전 '담배로부터의 독립'을 계기로 더욱 끈끈한 관계가 되었고, 이후 결혼, 그리고 아이를 양육하는 와중에도 간헐적 잡음은 있었으나 큰 무리 없이 관계를 이어 왔다. 

 

무언가 이상한 기후를 느낀 건 아주 최근이었다. 마냥 즐거웠던 나 자신과의 술자리가 예전처럼 즐겁지가 않았다. 살짝 무뎌지는 감각과 함께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이완되었던 지난날과 달리, 사소하고 작은 외부의 자극이 이상하리만큼 커다란 감정의 변화로 이어졌다. 즐겁지 않으면 먹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바로 그때 이상함을 감지했다. 술을 마시는 행위의 주도권이 더 이상 나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증폭되는 여러 감정들이 나와 나의 가정의 소소하고 행복한 저녁 시간을 조금씩 앗아가고 있다는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때 이상함을 감지했다.
술을 마시는 행위의 주도권이 더 이상 나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날도 출장 이후 1주일 만에 마주한 아내와 아기와 함께 외식을 했다. 물론 이미 저녁 자리의 주인공 자리를 꿰찬 술도 함께 했다. 그렇게 나는 주도권을 잃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운전대를 아내에게 맡긴 채 집으로 돌아왔고, 역시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