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없삶 ep. 2 - [Day 1] 그래도 우리, 정말 좋았잖아...

2023. 11. 21. 09:14시리즈물/술이 없는 삶 | Alcoholles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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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즈음 스르르 눈이 떠졌다. 육체는 아직 술이 덜 깬 상태였으나, 나의 의식은 나름 또렷하게 깨어나는 것 같았다. 입은 여전히 텁텁하고 온몸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알코올의 몽롱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가운데, 지난 밤 아내와의 대화와 아이의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우리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갑자기 술과 함께 울고 웃었던 지난 20 여 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흡사,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증언하는 생과의 이별의 순간에 마주한다는 순간적 회상처럼 느껴졌다. 담배를 끊었던 2015년 11월 1일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존경하는 작가 Allen Carr의 Easy Way to Stop Smoking 이라는 책을 통해 금연에 대한 많은 준비와 훈련을 했던 상황이었기에, 헤어질 결심을 하기가 어려웠지 정작 이별의 과정은 수월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담배와 함께 했던 시간은 그저 달콤쌉싸름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 일말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다.

 

술은 달랐다. 술과의 이별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소원한 적이 분명 있었으나, 담배와의 관계를 정리하고는 더 없이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고, 결혼과 육아 등 내 인생에 굵직한 이벤트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아꼈다. 

그래도 우리, 정말 좋았잖아...

 

그래서 자다가 무심코 깬 새벽에 펼쳐지는 일련의 생각과 감정들이 무척 당황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