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21. 03:38ㆍ지속 가능한 발전 | Sustainable Development/회복력 (Resilience)
모든 역사는 후손에 의해 평가된다. 당장 보기에 훌륭한 사업일 지라도 후손에 의해서 역사의 졸작으로 평가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현재에 사는 우리가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역사에 큰 관심을 갖고 평가를 하고 있다면, 미래의 우리 후손들은 물 부족 문제를 비롯한 환경 정책과 관련한 우리의 역사에 큰 관심을 갖고 냉철하게 평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때에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누군가가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현재의 선택과 판단은 역사에 남을 것이고 우리 후손들의 삶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1. 지구의 자정능력
남북한이 경계를 하며 끼고 있는 DMZ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예라고 볼 수 있다. 불과 60 여 년 전에만 하더라도 사람이 살았던 그 곳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DMZ(DeMilitarized Zone)이라 명명되며 사람들로 하여금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되어버렸다. 현재 그 곳은 멸종 위기의 동식물들이 인간의 개발이나 간섭으로 부터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한반도상의 몇 안되는 지역이 되었다. 지뢰로 인해 화재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사람이 불을 끄거나 복구작업을 하지 않아도 자연 스스로가 다시 그들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복원을 하곤 한다. 이처럼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한, 자연은 스스로의 자정능력과 복원능력을 갖고 있다. 그 피해가 자연 재해에 인한 것이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지뢰에 의한 것이든 상관 없이 말이다.
구 소련의 체르노빌도 마찬가지다.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역사상 최악의 방사능 유출 사건으로 기록된 체르노빌 사건 이후, 사람들은 체르노빌을 떠났다. 인간에 의해 버림받은지 24년이 지난 현재의 체르노빌은 인간은 살 수 없을 지언정 멸종 위기의 동식물들의 터전이 되고 있다. 인간이 지은 건물들은 비와 식물들에 의해 부식되면서 무너지고 울창한 숲이 자리잡기 시작하였고 인간들의 남긴 아픈 흔적들을 자연 스스로가 조금씩 치료하며 자신들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개발을 위한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한 자연은 자정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2. 개발과 물
인간와 개발을 말할 때 물을 빼놓을 수는 없다. 우선 기본적으로 우리는 염분이 없는 신선한 물을 마셔야 살 수 있고, 배변 활동을 해야만 한다. 먹을 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농축업을 위해서도 또한 농업 용수가 필요하다. 살 집을 짖기 위해서는 목재나 석재를 비롯한 여러가지 건축 자재를 가공해야 하는데, 이러한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공업 용수가 공급되어야 한다. 즉,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자연, 특별히 물을 이용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쩔수 없이 우리는 자연을 이용해야만 한다. 지구상의 모두가 산이나 강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살지 않는 한,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전히 우리는 자연을 이용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밖에 없는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는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 하면서 인간의 자연 활용은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면 물을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물을 포함한 자연이 제공하는 천연 자원들을 이용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물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3. 과거와 현재
지구상의 물의 양은 절대적이다. 지구 밖으로 방출되거나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순환될 뿐이다. 지구상의 물 중에서 우리가 먹고 마실 수 있는 염분을 포함하지 않는 민물의 비율은 고작 3%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극히 제한된 양의 물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그 사용량이 증가한다면 미래에 대한 공급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것은 당연한 논리로 보여진다.
< 물 부족과 관련한 National Geographic 의 짧은 동영상 >
4. 자연 그리고 몸
자연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경제 발전만을 바라보고 영원히 흐를것 같았던 물을 마구 이용하고 오염을 시켰다. 우리보다 미리 발전을 이루었던 선진국의 환경 파괴에 의한 피해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당장 우리의 자연은 멀쩡해 보였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개발이 우선이었다. 근래에 들어서 우리는 자연이 병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필요한 물의 양은 계속 늘어만 가는데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 몸에 면역 기능과 자연 치유능력이 있듯이 자연도 스스로를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인간이 계속해서 자연을 간섭해야 하고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연은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을 때는 수술이 필요하듯이, 자연이 인간에의한 이용과 오염을 지탱하기 어려울 때는 수술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의 몸을 개발하는 성형수술의 개념이 아니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거나 제거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여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치료, 혹은 이식 수술이다. 우리 몸의 일부분에 이상이 생겼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면 궂이 수술을 하지 않거나 간단한 제거 수술만 해도 된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 이용해야만 하고 부득불 오염을 시키게 되는 물을 자연의 정화능력에만 맡긴다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방치'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몸은 수 천만원의 개인돈을 들여서도 고치려고 하면서 우리의 삶의 기본이 되는 자연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 인색하단 말인가. 우리는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반대를 위한 시위가 아닌, 균형과 견제의 자세로 감시하고 비판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5. 맺음말
덧붙이는 말
지속 가능한 개발을 배우면서 한동안 이 글을 비공개로 해뒀었다. 개발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들면서 이 글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였다. 하지만 수정이 아닌, 조금의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1년을 마친 지금도 위 내용의 상당 부분에 대해서는 큰 생각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학기를 시작한 초반에는 학과 수업에서 개발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이 많이 있었다. 함께 공부하는 대부분의 학생들도 더이상 성장 위주가 아닌 자연환경 보존으로 가야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 방법을 배우고 함께 연구하는 것이 본인이 스웨덴에 온 목적이다. 특히 서방 국가, 소위 말하는 선진국에서 온 학생들은 어찌도 그렇게 또박또박 논리적으로 말들을 잘 하는지... 같은 학생이지만 정말로 멋있게 보였던 친구들이 많다. 두 학기를 마쳐가는 요즈음에는 그들의 또다른 모습을 본다. 그들은 개발을 반대하지만 인류가 개발을 통해 얻은 삶의 윤택함은 그들이 가장 많이 누린다는 것을 보게 된다.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말들을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나면 유럽의 저렴한 저가항공을 타고 시간이 아깝다는 듯 좋은곳을 찾아 다니며 엄청난 온실가스를 방출한다. 그들에게 '저개발'과 '가난'은 몸으로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한, 뉴스에서나 나오는 먼 나라 이야기인듯 하다. 그들은 또한 말한다. 수력발전소는 수자원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 시키기 때문에 지양해야만 한다고. 네팔에서 온 친구가 질문을 한다. "우리 가난한 네팔에서는 전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높은 낙차를 활용한 수력발전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네팔 사람들은 제한된 전기를 공급받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을 좀 제시해 달라." 명쾌한 답을 기대한 질문이 결코 아니란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한 연구자료에 의하면 민주주의와 환경 보호는 결코 비례하여 발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국가라고해서 성숙한 민주시민들이 솔선하여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환경을 보호하는데는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고 이는 개인의 예산이나 노력만으로는 결코 영향력 있는 결과를 얻어 내기가 쉽지 않다. 결국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시민들의 의견이 정당을 통해 국회에 전달 되어야 하고 국회는 이러한 시민들의 기대에 화답해야만 한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는 모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빠짐없이 들을 수도, 만족 시킬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의 민주주의의 두드러진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정부 여당은 지지 세력들의 말에만 지나치게 귀를 귀울인다는 것이고 야당은 정부에 반대하는 입장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여당과 시민단체의 견제 기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국민들을 대신해서 '균형과 견제'라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그들에게서 보여지는 시민 의식과 토론에 임하는 자세는 매우 실망스럽다.
우리나라는 개발과 보호의 중요한 전화점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2009년 에는 공식적으로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하는 국가가 되었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60여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고 발전을 경험하고 새로운 것들을 익히고 변화를 받아들이기에 그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과거의 고속 성장과 경제적인 부를 바탕으로 환경을 보존하고 복구하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국민 대부분이 뜻을 같이한다. 사람과 자연이 건강하게 공존할 수 없는 곳에서는 더 이상의 정상적이고 건강한 개발을 기대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우리는 앞서 개발을 이룬 선진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지금도 배우고 있다. 이제는 개인 차원에서 실천을 해야할 때이다. 정부를 상대로 환경을 파괴하지 말라고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다면 이제는 나 자신과 가정, 그리고 각자의 일터에서 자원이 낭비되는 상황이나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바꿔야 한다고 큰 소리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사회를 향해 요구하는 그 엄격한 잦대를 가끔은 나 자신에게도 적용시켜 본다면, 나 자신에게 배푸는 관용을 타인과 세상을 항해서도 배풀어 준다면, 난투극을 통해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고 아물어 가는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우리들의 성장 방식이 조금씩은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11.11.16 보충> [한겨례] 4대강 사업 성공했다고? 유럽판 4대강은 복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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