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下] 4 months

2010. 12. 27. 10:01인생 관찰 예능 | The Truman Show


3주 가량의 겨울 방학을 맞이하여 정신을 차리고 블로그를 들여다 보니, 8월 말에 작성된 글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록'을 목적으로 야심차게 시작한 블로그가 지난 4개월에 대한 아무런 기록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본 블로그의 근본 취지를 망각한 경거망동이라는 판단에 최소한의 흔적이라도 남기고자 부랴부랴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나이 서른 살에 공부를 더 해보겠다는 요량으로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사회과부도책에서나 보아오던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넘어 온 것이 지난 8월이다. 지금은 영하 10도의 날씨에서 온기를 느끼고, 낮에 잠시나마 떴다가 지는 태양볕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한 편의 글로 지난 4개월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무리가 있다지만 어찌 남기지 않는것보다 못하리요. 시간을 거슬로 지난 9월로 돌아가 보자.

09월: 유난히 긴 낮이 무척이나 낯설었던 늦여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날씨와 사람들을 만나고, 힘겹게 적응해 나가야 했던 여름. 내가 살던 숲의 많은 나무들은 한 여름의 태양을 가려주고 시원한 바람을 제공하며 산장과 같은 분위기를 제공했다. 이러한 여름을 맘껏 즐기기에는 다소 외로웠던 기억이... 외로움 정말 안타는 성격인데, 스웨덴의 지나친 평화로움과 고요함은 한여름에 외로움을 타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했다.

10월: 유난히 아름다웠던 스웨덴의 가을
숲 속에서의 생활은 여름에 이어 가을에도 나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일거리를 제공했다. 밤이면 지붕위로 떨어지는 도토리 소리에 기분 좋게(?) 잠이 깨고, 아침이면 아름다운 낙옆들이 테라스 가득하여 보는 기쁨 만큼이나 치우는 수고도 뒤따랐다. 가을이라고 하지만 잔디는 여전히 푸르고 햇살도 따사롭니다. 공부하기 힘든 가을이었다.

11월: 유난히 춥고 혹독했던 숲 속에서의 초겨울

숲 속에서의 생활은 여름과 가을에 이어, 겨울에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였다. 첫 눈이 온다고 좋아하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자전거를 타고가기 힘들 정도의 눈이 와 있었다. 오두막에는 난방시설이 부실했기에 오리털 파카를 나의 피부삼아 항상 입고 생활했다. 수업에 빠지지 않기 위해 도시락 2개를 싸들고 눈 길을 내 방바닦처럼 나뒹굴며 자전거를 타고 3 Km 떨어진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버스를 타고 웁살라를 가로질러 40여 분 만에 학교에 도착하며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버스 좌석에 놓여있던 신문에 낯익은 두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날씨 만큼이나 냉랭했던 남북관계로 나라 걱정에 시달렸던 11월...

12월: 유난히 짧은 낮이 또한 낯설었던 숲 속에서의 마지막 겨울  

숲 속에서의 생활은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작별의 순간에도 기쁨을 제공했다. 눈보라를 뚫고 통학을 하는 것이 일상으로 자리잡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적응하던 중,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좋은 가격과 학교와 가까운 위치의 방을 구했다. 고생은 끝이라서 좋은데 추억도 끝이라고 생각하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나의 이사 소식을 전해들은 친구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숲 속 오두막에 놀러왔다. 주인 집에서 바베큐 그릴을 빌리고, 눈을 파해쳐 나뭇가지도 긁어 모아서 영하 15도의 눈 덮인 숲 속에서 바베큐 파티를 했다. 마지막까지 추억을 만들어 준 숲 속 오두막...

분명 그리 길지 않은 4개월 이었는데, 당시의 사진을 돌아보는 것이 먼지가 소복히 쌓인 옛 앨범을 오랫만에 열어본듯한 기분이다. 왜 일까? 항상 화창하고 포근한 날씨와 인심좋고 훈훈한 사람들이 있던 터키와는 달리, 스웨덴은 우울하고 혹독한 날씨, 그리고 그 날씨 만큼이나 차가운 사람들로 인해 터키에서 느꼈던 그러한 애착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억이 추억이 되어버리면 그토록 추웠던 숲 속에서의 밤, 길고 긴 학교 가는 길,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그리움으로 남는가보다. 스웨덴에 있는데 스웨덴이 그리운 이 요상망측한 상황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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