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진정한 투자란?

2018. 8. 4. 15:56지속 가능한 발전 | Sustainable Development/미래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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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있는 시간이 많지만 TV가 없는 나는 팟캐스트를 듣는 시간이 많다. 

내가 살아있는 한 경제라는 공기와도 같은 현상 혹은 시스템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평소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매일같이 즐겨 듣는다. 마법같은 비유로 경제 상식을 쉽게 풀어주는 이진우 기자의 폭넓은 지식과 말솜씨에 매 번 감탄하면서 듣고 있다.

더불어, 팟캐스트계의 유재석이라 불리는 최욱씨(물론 그의 말이다.)가 정영진씨와 함께 진행하는 불금쇼는 무료한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한 일종의 예능 팟캐스트이다. 최욱씨의 넘치는 센스와 드립에 감탄하고, 그의 다소 무리한 드립을 절묘하게 받아치는 정영진씨의 센스와 포용성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최근에는 새로운 정부 이후 다들 바빠진 이유에서인지 불금쇼의 업데이트는 느려지고 매불쇼라는 이름의 또 다른 데일리 형식의 방송을 시작했지만, 당췌 예전만 못하다. 최근에는 구독을 취소했다.

암튼 그렇게 나에게 목소리가 익은 이진우 기자와 정영진씨가 신과함께라는 방송을 시작했다. 김동환 소장은 이진우의 손경제에서 자주 목소리를 들어왔지만, 이진우 기자와 김동완 소장이 이정도의 농을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과 그에따른 케미는 결코 공중파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이 방송이 주는 특별한 사실이고 재미이다. 이진우 기자도 손경제에서의 반듯하고 정돈된 모습과는 달리 비유에 실패하면서 보여지는 인간적인 모습들이 그를 쫓아 신과함께를 찾아온 청취자들에게 방송의 매력을 더해준다. 정영진씨는 언제나처럼, 그렇게 재밌다. 이상하게 재밌다 이사람은. 최욱보다 더.

'경제'라는 주제로 시작된 이 팟캐스트는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그 이면에 숨겨진, 혹은 숨겨지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경제 이야기들을 풀어가고 있다. 평소 유익하게 즐겨듣고는 있지만, 팟캐스트 방송 하나로 뭐 블로그 글 하나를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황금같은 토요일 오후 시간에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이유는, 이 방송이 나로하여금 투자에 대한 커다란 사고의 전환을 유발 했기 때문이다. 결코 날이 심하게 더워서 집 근처 도서관을 찾아온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 전환적 사고의 임팩트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조금 먼 과거로 가야할 것 같다. 

TMI 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성실하게 회사생활을 하셨던 50년생(호랑이띠) 아버지 덕분에 부자는 아니었지만 돈이 없으면 비참하거나 삶이 힘들다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분명 얽히고 섥혔던 가족의 '돈' 문제로 갑자기 사글세 방으로 이사를 했고 다시금 시골 천막집으로 가야만 했던 과정이 있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이러한 과정이 큰 상처가 되었다기 보다는 그저 새롭게 탐험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와 공간이 생겼다는 설레임이 더해질 뿐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항상 돈에 벌벌 떠셨던 기억이 나지만, 그 반작용에서인지 부모님은 나에게 돈이나 높은 학업 성취도를 특별히 강요하지 않고 목가적인 환경에서 방목을 하셨던 터라, 고3 시절에도 좋은 학교를 열망하기 보단 충분한 잠을 잘 수 없음을 원망하며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2차 야간자율학습을 거부하고 유유히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그렇게 어찌 대학을 가고 다들 가는 군대를 제대한 후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이었던 23살 여름, 군대에서 정신 차리고 전과를 준비하던 나는 함께 수학을 공부했던 고향 친구의 손을 잡고 당시 다단계 업계의 삼성이라던 퓨온(Fuon)이라는 회사에 당당히 입사했다. 대학2년 생이 취업이라니, 감계무량한 순간이었으나 2주 간의 쓰디쓴 경험을 한 후 돈은 성실하게 몸을 움직이거나 나의 귀한 시간을 투자해서 정직하게 벌어야 한다는 나름의 확고한 생각을 갖고 어렵사리(?) 퇴사를 하였다. 물론 몇 개월 후 친구의 퇴사도 도왔다. 

그러고는 대학 졸업을 앞둔 27살 즈음, 당시 한창 유행이던 중국 펀드에 알바를 하며 모았던 피같은 돈 30만원을 투자했다가 반토박이 난 경험을 하고는 다시금 소위 말하는 '투자'로부터 멀어졌다. 그렇게 10여 년을 '투자'라는 단어를 사행성 짙은 금기어로 자체적으로 규정하고 철저히 외면해 왔다. 물론 투자할 돈도 없었다.

그 철저했던 외면은 2018년 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가상화폐 시장 앞에서 잠시 해제되었다. 친구의 권유로(그 다단계 친구는 아니다) 처음 빗썸에 가입하면서 받은 1,000원으로 리플(당시 220원)을 사뒀던 것이 몇 개월 후 갑자기 900원으로 오르는 것을 보고 카카오뱅크에 고이 모셔두었던 적금에서 긴급 출금을 하여 리플을 900원에 샀다가 약 3시간 동안의 지옥을 맛 본 후에 20만원을 손해보고 전부 매도하였다. 결국 그 후 리플은 4,000원대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500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지금이 정상이라면 정상이다. 

그렇게 나에게 '투자'는 나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악'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신과함께에 출연한 '존 리' 메리츠자산운영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되었다. 일단, 

1) 내가 '투자'라는 단어로 알던, 종잣돈을 바탕으로 주식을 단기로 사고파는 방법을 통해 차익을 남기는 행위는 '투자'가 아닌 '도박'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지금도 '투자'라는 키워드의 광고 알고리즘에 따라 이 글의 위 아래로 있을 광고의 대부분은 1년 이내의 단기매매 전략을 바탕으로 한 '도박'을 얘기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확인해 보시라. 단 확인만 하시고 절대 현혹되지 마시라.),

2)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현재 모습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통해 "장기적으로 가치있는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투자'라는 것을 알았다.

3) 그리고 그 방법은 끊임없는 파생 소비를 부르는 과시성 소비로 낭비되던 소중한 자금을 자신의 철학과 가치를 실현하면서 이익(지속가능성)을 실현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업의 주식을 조금씩 매입하고 소유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서 말이다.

4) 그리고 그러한 투자는 결코 자신 소득의 10%를 넘지는 말아야 한다. (정확하게는 그는 적어도 10%는 투자를 해야한다고 했지만 10%를 넘어서면 인간의 본연의 욕심이 발동하기 때문에 이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분명 어딘가에서 한두번씩 들어왔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신과함께의 방송을 통해 그 의미가 유독 나에게 크게 다가왔던 것은, 존리라는 사람의 삶을 통해서 느껴지는 '진정성' 때문이었다. 특히, 그가 보통 사람들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결국 자본에 종속되어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지목한 3가지 라이프 스타일(소비 스타일)이 나로하여금 그를 주식과 펀드를 파는 월스트릿 출신 장사꾼이라는 생각을 접게끔 만들었다. 그 3가지 치명적인 비용은 아래와 같다.

1) 고급 자동차를 구입하고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자동차는 구입하는 순간부터 그 실질적 효용보다도 그 재화 자체를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한 다양한 비용이 발생함과 동시에 정작 그 제품 자체의 가치는 그 어떤 재화보다 빠르게 감소한다)

2) 자녀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고액 과외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마음껏 놀고 고민하면서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건강한 '멘탈'이다.) 

3) 불필요한 보험에 들어가는 비용 (보험은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리스크와 두려움을 이용해서 노동자들이 피땀흘려 번 소중한 자산을 매 달 조금씩 소리소문없이 보험회사의 계좌로 옮겨가고 있는 수단이다. 그리고 그 보험료를 벌기위해 노동자들은 또 노동을 한다. 최소한의 보험만 있으면 되지만, 그 최소한의 기준은 물론 사람이 처한 상황과 가치, 철학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강요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나의 경우는 좀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나는 그 흔한 의료실비보험 조차 없다. 실비보험금을 타먹기 위해 과잉 진료와 처방을 받고 그 비용을 청구하는 과정에 시간과 열정, 그리고 정신을 낭비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봤다.)

하고싶은 얘기가 많고 인생은 길지만, 내가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가 않다. 혹여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오랜기간 있다 하더라도 내 몸이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고, 정말로 더이상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다행히도 아직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나의 지난 37년 보다 앞으로 남은 40여 년의 삶이 왠지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