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교통에서 도시의 길을 찾다

2013. 6. 12. 23:44지속 가능한 발전 | Sustainable Development/도시 (Urban)


생태교통(EcoMobility)에서 도시의 길을 찾다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소식지 1호 PDF

 

한국 전쟁과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시작 부분에서는 1950년대 서울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이 나온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로 붐비는 종로거리에는 노면 전차의 모습, 자전거, 그리고 드문드문 자동차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불과 60여 년 전의 모습이지만 1,000만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는 현재 서울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어찌 보면 그 당시 서울의 모습이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생태교통(EcoMobility)’과 더욱 가까운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아직은 많은 이들에게 낯선 용어인 ‘생태교통’에 대한 개념의 이해를 돕고, 나아가서는 각 분야의 정책결정자들과 실무자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데 보탬이 될 만한 정보들을 전하고자 함이다. 이번 호에서는 그 첫 번째 순서로, 생태교통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 시대적인 배경과 그것이 우리나라 도시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이동성(Mobility) 혁명과 도시의 팽창

과거 우리나라의 주요 도시들은 물론 중세 유럽의 도시들도 대부분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영주들을 비롯한 상위 계급의 사람들은 외부 세력으로부터 안전한 성곽 안쪽에 터를 잡고 살았으며 상인을 비롯한 하층민들이 성곽 밖에서 살면서 성을 드나들며 일을 하고 장사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나야하는 성문 주변에는 언제나 큰 장이 생긴다. 서울의 남대문, 동대문 시장, 그리고 수원의 팔달문 시장을 그러한 경우라 볼 수 있다. 대량으로 사람과 물자를 나를 수 있는 동력 교통수단이 없던 당시에는 사람들의 이동성이 제한되어 주거지역이 성문 밖으로 멀리까지 형성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19세기 중반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과 함께 인류는 이동성(Mobility)에 있어서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된다.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재화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 졌고, 그렇게 대량으로 생산된 재화를 타 도시와 무역항 등으로 효율적으로 운송하기 위한 철도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철도망을 통해 사람과 물자의 도시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도시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의 반경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도시의 팽창은 20세기 초반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한 자동차의 보급과 함께 더욱 가속화되었고, 그렇게 지구상의 많은 상업 도시들이 자동차에 최적화된 모습으로 개발되어갔다. 대량으로 생산된 재화들이 대량으로 운송되고 사람들이 몰리는 도시에서 대부분이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사람과 물자, 그리고 에너지 자원들이 도시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된 산업 혁명은 일종의 이동성 혁명으로 이어졌고, 도시의 팽창과 도시 인구 증가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 한 동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 연안국들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하여, 이들이 전 세계의 도시 인구 증가는 물론 에너지 소비량 증가를 이끌고 있다.

 

UN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현재 도시들은 이미 지구상 절반 이상의 인구를 수용하고 있으며 2050년에는 전체 인구의 70% 가량이 도시에 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보다 더 가까운 미래인 2030년에는 지구상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73%가 도시에서 소비될 것으로 예측한다. 한편, 사람과 물류의 이동을 담당하는 교통부문은 이미 세계 오일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비중은 승용차의 수가 17억 대로 증가하고 도로 수송 수요가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쯤 되면 대량교통수단의 발달과 급격한 도시화, 그리고 그에 따른 화석연료 사용의 증가가 지구 대기와 기후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을 근거 없는 이야기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기후 변화에 관한 국가 간 패널(International Panel for Climate Change: IPCC)은 인류가 기후 변화로 인한 최악의 피해를 면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적어도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의 50%를 감축해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교통 부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도시와 교통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원인임과 동시에 해결책으로 지목되고 있다. 도시에서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시의 구조와 교통 기능의 최적화를 통해서 현재보다 적은 에너지를 활용하여 현 인류가 누리는 삶의 질을 유지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이처럼 도시교통에서의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사람 중심의 ‘이동성’에 초점을 맞춘 생태교통(EcoMobility)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생태교통, 2차 이동성 혁명

생태교통(Ecomobility)이라는 단어를 처음 소개한 콘라드 오토 짐머만 ICLEI 전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하면, 생태교통의 목적은 우리가 이동을 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에너지만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자동차가 개발된 이래로, 경제성장과 함께 자동차는 점점 더 크고 무거워지고 있다. 게다가 자동차의 배기량의 크기가 부의 상징이 되면서, 무거워야 100kg에 불과한 사람 한 명을 이동시키는데 1.2톤의 차량에 싣고 1km 당 2,000cc 이상의 휘발유를 사용하는 비효율적인 모습을 사람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편, 인류는 기술의 개발을 거듭하면서 도구의 크기를 작고 지능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건물 한 층 전체를 점유하고 많은 전력을 소모해야 했던 초기의 컴퓨터는 어느새 무릎 위에 놓을 수 있는 작은 노트북이 되었고,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컴퓨터의 많은 기능들을 흡수하면서 모든 것이 손바닥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정보통신 기술 개발과 인프라의 확충은 보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정보에 쉽게 접근(Access)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접근성(Accessibility)의 향상은 물리적인 이동을 위한 교통수단에서도 이루어져야하지 않을까?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들에서는 커다란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들이 대부분의 목적지에 접근하기에는 매우 쉬운 반면,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 주로 어린이와 노약자, 그리고 장애인들의 접근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이처럼 이동에 있어서 비효율적으로 낭비되는 자원을 줄이고 걷기, 자전거, 대중교통으로 대표되는 생태교통 수단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도시가 변해야 한다. 이동 패러다임의 변화는 비단 개인의 인식 변화와 의지만으로 실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개인과 가족의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받아들이려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환경, 즉 도시가 변해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질 페날로사 8-80 도시 사무총장은 미래에 가장 안전하고 보편적인 이동수단은 걷기가 되어야 할 것이며 걷기에 좋은 도시가 가장 쾌적하고 안전한 도시하고 말한다. 또한 40명이 탄 버스가 1명을 싣고 있는 자동차보다 도로에서의 우선권을 얻는 것은 민주주의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자전거 타기나 걷기와 같은 생태교통수단은 유일한 개인 교통수단이며 이를 위한 안전성을 보장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에 대한 주장이라고 역설한다.

 

미래의 모습을 현실에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0년 넘게 자동차를 몰고 다니던 사람들로 하여금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도록 하여 자발적으로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하도록 독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태교통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불편을 감수하는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전반적인 구조와 시스템을 자동차가 아닌, 대중교통과 자전거, 그리고 보행자에게 최적화되도록 변화시켜감으로서 생태교통수단들이 자동차에 비해 사용자들에게 더 큰 편익과 즐거움, 그리고 경제적인 이익을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본인이 경험해 보지 못한 즐거움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생태교통 사회를 현실에서 재연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ICLEI와 수원이 오는 9월에 개최하는 「2013 생태교통 페스티벌 수원」이다. 차 없는 날 행사는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한 달 동안 특정 구역 내에서 자동차 없이 생태교통 수단으로만 생활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일이기에 더욱 어렵고 실험적이 도전이다. 더욱이 이러한 도전이 세계의 도시화와 에너지 사용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한국에서 벌어진다는 것은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며, 특별히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시사 하는바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한 달 동안의 자동차 없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주민들의 희생과 세계 최초의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현재를 사는 우리뿐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 갈 미래를 위한 용감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감히 기대해 본다. 이번 페스티벌의 시작과 함께 진행될 「2013 수원 생태교통 세계총회」를 통해서는 생태교통의 이론적 바탕과 근거가 될 수 있는 세계 곳곳에서의 연구와 사례들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토론들이 벌어질 예정이다. 이처럼 생태교통과 관련한 최신의 이론과 기술들을 한 자리에서, 더욱이 가까운 곳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지자체는 물론, 관련 기관과 학계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옛 성곽자리에는 자동차 길이 아닌 자전거와 보행자를 위한 생태통로가 설치되었다.


마지막으로, 자전거 수송 분담률이 38%에 이르는 독일의 자전거 수도 뮌스터가 지금의 모습으로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복구 과정에서 성곽이 있던 자리에 자동차 길이 아닌, 생태통로를 조성했던 과감하고 역사적인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도시들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낡은 부분들을 새롭게 고쳐 나가고 있다. 지금의 우리의 선택들이 후손들에게 새롭게 고쳐야 할 또 다른 ‘문제’를 남길지, 아니면 그들의 생활을 변화시킨 ‘역사적 선택’으로 기억될지는 현재를 사는 우리의 현명한 선택에 달려있다.



참고문헌

1) 김진애,도시 읽는 CEO, (21세기 북스, 2009)

2)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도시, 인간과 공간의 커뮤니케이션(커뮤니케이션북스, 2009)

3) 이경훈,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푸른숲, 2011)

4) 한국교통연구원,『KOTI-지속가능교통브리프』, (Vol.2 No.6, 2011)